2007년 05월 20일
부분과 전체 - 하이젠베르크
어떤 책은 수이 읽혀 빨리 지나가면서 봐도 되고
어떤 책은 수없이 고민하면서 읽어야 겨우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각각 중요한 면이 다르고, 취할 부분이 다르며, 전개하는 방식도 다른데
이런 내용들은 책을 읽기전에는 절대 알 수 없다.
별 생각없이 읽었던 '부분과 전체'는 여러모로 생각할 부분이 많고
재미있는 내용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청년기에서부터, 결혼, 2차세계 대전을 겪고나서
통일 독일의 재건을 담당하고, 독일이 어느정도 안정화되었을 시기까지를 다룬다.
책 내용은 물리학과 철학, 세상과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겪은 세상일과 원자물리학에 대한 얘기와
보이지 않는 원자 물리학의 세계를 탐험하며 철학적으로 사고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어렸을 적 많이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책 내용에
자신의 가난함(여비가 모자라 스승인 교수님께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서
겨우 학회에 갔다는 내용, 짐을 잃어버려서 상실감이 크고 차마 부모님께
손벌리지 못해서 학교도 잠시 쉬면서 벌목일을 하여 돈을 벌었다는 얘기등)이
초반에 종종 나오고 이로 인해 생기는 일과 또 가난함이 전혀 학문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고전 원자물리학의 모순으로 인해 양자역학을 발견하게 되는 모습.
또 그 양자역학이 일부 고전 물리학자들의 저항으로 인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이 나온다. 그중에서 아인슈타인의 극렬한 반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여러 글을 통해서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책에서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은 옹렬하기짝이 없는 모습도 나온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상대성이론의 '시간'이라는 개념때문에 기존 학자들에게 많이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파동방정식으로 유명한 슈뢰딩거 역시 아인슈타인처럼 초기에는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는데, 여기서 아주 골때리고 재미있는 부분이 책에 나온다.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으로 설명되는 부분을 자신의 수식으로 풀어내서
고전물리학자/양자역학을 받아들이는 물리학자 모두에게 환호를 받았으나,
그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양자역학을 거부하는 내용을 발표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토론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시간
계속되었다. 며칠 뒤 슈뢰딩거는 발병하고 말았다. 아마도 극도의 긴장에서
온 것이었으리라. 그는 고열을 수반하는 감기로 자리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보어의 부인이 그를 간호하면서 차와 과일을 날라다 주곤하였는데,
보어는 여전히 병상 모서리에 앉아서 슈뢰딩거에게 '그러나 또한
당신은 ……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책 6장 신세계로의 출발Ⅱ
양자역학이 완성될 즈음에는 세계 2차 대전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페르미와 하이젠베르크의 토론. 페르미는 나치주의로 대표되는 광기어린
집단이 장악하고 있는 독일에 있지 말고 미국으로 이주하라고 하나
하이젠베르크는 어렵겠지만 남아있어서 약간의 불의와 타협하더라도
전쟁후의 독일 재건에 힘쓰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남게 되고
2차 세계 대전시에 독일 나치군 치하에서 핵물리학 연구를 더 하게된다.
멀지않아 나치군은 패하게 되고 독일 물리학자들은 모두 연합군에게
잡히고 연합군과 연방독일의 재건을 돕게 된다.
그쯔음에 미국에서 일본으로 핵폭탄을 투하하고,
이에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원자물리학이 세계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무기가 되었음에 대해 토론을 한다.
과학과 기술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정치적으로 과학은 자유로울 수 있나?
선을 위한 목적이라면 수단은 정당화 될 수 있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자주 볼 내용이지만, 이렇게 보니 새롭게 와닿고
하나하나 업수이 봐서는 안될 중요한 주제임을 알 수 있었다.
전쟁 후 독일의 재건에 힘을 쓰고 연구소를 건설하면서 하이젠베르크는
정치의 힘에 대해서 느끼게 되고, 핵의 정치적 사용에 대해서 반대한다.
그리고 소립자 물리학의 통일장이론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마무리는 하이젠베르크와 부인과 두아들이 생물학자의 집에 방문하여서
베토벤곡을 합주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책에서 역자후기가 있으며 '부분과 전체'의 제목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
역자 본인의 생각이 나타난다. 하이젠베르크는 왜 책 이름을 '부분과 전체'라고
지었을까. 책 줄거리만 고려해본다면 다른 이름 선택할 여지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언급되는 보어의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이면서도 공연자"라는 말을 끝에 배치한 이유로
대강은 짐작할 수가 있다. 인류 역사속에서, 세계속에서 부분이라는 자신과
부분들이 이뤄진 전체. 부분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전체는 다시 부분을
강제하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상호작용과 대칭성에 관한 얘기를 더 강조하고
싶었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 책에서 감동받은 점은 독일에서는 도보 여행이 상당히 잦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토론하고 즐기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던듯 싶다.
가난하면서도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하이젠베르크가 부러웠다.
나같은 경우에는 전혀 음악을 몰라서 음악할 줄 아는 사람이 왜 이리 부러운지.
또 화학교과서에서만 보던 파울리와 다른 물리책에서 보던 물리학자 이름이
이렇게 연관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파울리는 야행성 인간이라 밤에 물리공부하느라 아침에 지도교수님
수업제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나온다. 물리학 대가와 학생이 허심탄회하게
서로 토론하는 모습도 일상적이었던게 충격적이고 부러웠다.
물리와 철학이라는 흔치 않은 주제가 잘 어우러진 정말 좋은 책을 읽어서 기쁘고
왜 독일이 철학이 발달하였는지도 알듯 싶기도 하다. 나치주의자나 생물학자도
양자역학을 이루는 철학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후에도 곱씹으면서 다시 읽어봐야할만한 정말 좋은 책이다.
이 책에도 단점은 있는데, 번역책에서 느끼는 이상한 문맥구조, 괴상한 단어 사용은
없으나 희한하게 대화하는 부분에서 말투가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투인 것이
꽤나 거슬린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전혀 무리없고, 번역도 잘 되어있는 편이다.
또 미리 알아야할 선수 지식으로 양자역학이 왜 탄생하였는지, 관련된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총평하자면 이 책은 물리와 철학에 관심있는, 혹은 둘 중 하나에 관심있는
일반사람이 읽을 만하며. 개인적인 소장여부에 대해서 묻는 다면
사서보라고 권하겠다. 사서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어볼만한 책이다.
# by | 2007/05/20 05:00 | 책 | 트랙백

![Aladdin:ISBN-8942389058 [ISBN-8942389058]](http://image.aladdin.co.kr/cover/cover/8942389058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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